
1980년 5월,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광주.
우연히 발견된 외신 기자의 낡은 가방 안에는 암호로 가득 찬 취재 수첩과 렌즈가 깨진 카메라가 들어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을 세계에 알려달라"는 절박한 메모를 따라, 위대한 목격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짓밟았습니다.
이튿날 광주에는 최정예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무자비한 유혈 진압이 시작되었고, 도시는 모든 통신과 교통이 끊긴 채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계엄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분노한 시민들이 집결하고 있는 금남로 중심부로 은밀히 이동해야 합니다.

1980년 5월 20일 밤,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들이 전조등을 밝히고 금남로로 돌진하며 거대한 차량 시위를 이끌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항쟁은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계엄군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몸을 숨겼습니다. 낡은 담벼락에는 군부의 눈을 피해 누군가 긴박하게 붙여두고 간 지하신문 한 장이 남아있습니다.

신군부가 보도지침을 내려 신문과 방송을 철저히 장악하고 거짓을 유포하자, 광주 시민들과 들불야학 청년들은 스스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비밀 지하시설에서 등사기로 삐라 형태의 신문인 '투사회보'를 제작해 시내에 배포했습니다.

피와 눈물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았던 광주 시민들의 온기를 카메라 렌즈에 담아 역사적 증거로 기록해야 합니다.

치안 공백이 발생한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광주에서는 단 한 건의 약탈이나 강력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했고, 시장 상인들과 어머니들은 따뜻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며 경이로운 '절대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취재 수첩 갈피에서 손때 묻은 낡은 지도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광주와 외곽 지역을 잇는 길목에 다급하게 표시된 붉은 X표. 계엄군의 통제선을 뚫고 진실을 전파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흔적을 추적해야 합니다.

신군부는 광주의 진실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곽 전령 통로인 '너릿재' 고개를 전면 봉쇄하고 통행하는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이 고개를 넘어 주변 지역에 참상을 알렸으며, 트럭에 확성기를 달고 결사적인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마침내 광주의 참상을 온전히 담아낸 결정적 필름을 확보했습니다. 이 필름을 외부 세계로 안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계엄군의 눈을 피해 험난한 산길을 우회해야 합니다. 지치지 않는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광주의 모든 통신망과 도로가 차단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은 필름을 과자통이나 속옷 속에 숨긴 채 샛길과 험준한 산길을 넘어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 외신에 보내어 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산길 봉쇄망을 탈출해 은신처에 무사히 당도했습니다.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자 마지막 항전의 기록이 담긴 결정적 유품 증거를 스캔해야 합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은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 안치되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시민들은 피로 얼룩진 관 위에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덮어주고 애도하며, 영령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투지를 다잡았습니다.

수집한 기사 원고 위에 신군부의 가혹한 검열 흔적이 가득합니다. 기사 전체가 온통 붉은 잉크로 훼손되어 왜곡되어 있습니다.

군사정권은 언론사에 철저한 '언론 검열 및 보도 통제'를 강요하며 광주의 비극을 '폭동'이나 '불순분자의 난동'으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사상자 수를 은폐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과 참된 언론인들은 유인물과 목숨을 건 발행을 통해 왜곡된 거짓의 벽을 허물고 진실을 끝까지 알리기 위해 저항했습니다.

차가운 메탈 재질의 텔레타이프 전송기 앞에 섰습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가냘프지만 결연한 시민군의 마지막 가두방송 목소리가 새벽녘 광주 시내에 확성기 소리로 아스라이 들려옵니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의 잔인한 무력 진압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목숨을 잃을 것을 직감하면서도 수많은 시민군들은 도청에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저항했습니다. 비록 도청은 함락되었으나, 그들이 남긴 거룩한 불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대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뜨거운 용기와 정의로운 연대 덕분에 마침내 감춰져 있던 광주의 모든 진실이 전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오늘 여러분의 기억을 통해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이 화면을 캡처하여 기념으로 남겨주세요)